SDF 다이어리

Ep.115

Ep.115민주주의, 부서지는 건 순간이라고?

2022.08.17

안녕하세요. 지적인 당신을 위한 인사이트, SBS D포럼에서 보내드리는 ‘SDF다이어리’입니다.

SDF2022는 <다시 쓰는 민주주의>라는 주제 아래 올해 포럼을 준비하면서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발전 및 후퇴 상황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꼭 맞아떨어질 수는 없겠지만, 여러 나라의 다양한 민주주의 사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찾고 제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데요.

지난해 1월 6일, 현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임을 자부했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큰 혼돈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대선 불복’을 이유로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면서 폭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사태는 하루아침에 미국 민주주의의 위상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는데요. 미국의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까요?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 의회 폭동 현장에서 밤샘 취재를 했던 SBS 김수형 기자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반갑습니다. 먼저 SDF다이어리 구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SBS 김수형 기자라고 합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 특파원으로 3년 반을 근무하고 한 달 전에 본사로 복귀했습니다. 그동안 주로 정치 분야를 맡아 취재를 많이 했고요. 특파원 부임 전에는 IT 담당으로 5년 정도 취재한 경험이 있습니다.

Q. 지난해 사상 초유의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 현장에 계셨다고요.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주시겠어요?

지난해 1월 6일에 발생한 미국 의회 폭동을 한국에서도 굉장히 충격적인 이미지로 기억을 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의사당 벽면을 타고 오르고, 유리창을 깨부수고 의사당에 난입해서 의원들이 황급하게 대피하고, 경호원들은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총을 겨누고요. 그런 장면들이 기억이 나실 텐데요. 실제로 현장에서 총에 맞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부수며 점령군 행세…의원들 긴급 대피 <2021년 1월 7일 / SBS>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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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처음 취재 현장에 나갔을 때는 이게 폭동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날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그전에도 “대선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하고 있던 상황인데요. 그날은 의사당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 결과가 확정되는 날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승복할 수 없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지지자들이 워싱턴 DC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형의 대선 불복 집회는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의회 폭동) 당일에도 그 정도의 느낌을 가지고 취재를 시작했었거든요.

현장에서 좀 특이했던 장면은 사람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거예요. 나무 위에 매달려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보려고 한 것이죠. “내가 이제 이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 모르겠다.”라는 좀 약간 비통하고 애틋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들은) 전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굉장한 팬클럽이었어요. 그런데 반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에도 연설을 세게 하는 편이기는 했는데, 그날은 훨씬 강렬했어요.

나무 위로 올라가 연설을 듣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

- 닥치는 대로 부수며 점령군 행세…의원들 긴급 대피 <2021년 1월 7일 / SBS>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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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죽도록 싸우자, 의사당에 몰려가서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라고 말하는데, 지지자들이 그냥 “와~~” 하고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굉장히 사납고, 못되고 나쁜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 제가 만나본 트럼프 지지자들은 상당히 순박한 사람들이었어요. 집회 현장에 가서 인터뷰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사람들이 굉장히 순하다는 느낌을 받고, 굉장히 천진난만하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그들이 (트럼프 대통령) 연설에 격동이 되어서 의사당 방면으로 행진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저도 급하게 의사당으로 따가라 봤죠. 사람들이 의사당 벽면을 기어오르고, 경찰들과 싸우고 최루탄이 날아다니면서 매캐한 연기가 나고 그러더라고요. 한편에서는 누가 총에 맞았다는 소리가 들리고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라고 직감을 했죠. 오후가 되어서는 주방위군, 군인까지 투입이 됐습니다.

美 의회 난입한 시위대…"1명 총상" 현장 아수라장 <2021년 1월 7일 / SBS>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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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당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봤어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의사당에 들어가신 겁니까?” 하고 물었는데요. 아직도 그 답변이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의회의 주인 아니냐, 저 안에서 불법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하니 내가 들어가서 본 것이다. 무엇이 문제냐?”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인데,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선동이 되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현장에 동원될 수 있는지,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던 날입니다. 강렬한 인상이 남아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어떤 완성체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예쁜 꽃 같지만 굉장히 부서지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서지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하고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것이죠. 물론 지금도 미국의 제도적인 민주주의는 굉장히 앞선 측면이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점들이 많지만 그렇게 선진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는 미국조차도 선동에 의해 민주주의가 크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죠. 그리고 꼭 이것이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세계 민주주의의 리더로 평가받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한 건데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미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미국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된 이유를 말하자면 아마 논문을 여러 개로 정리해도 부족할 겁니다. 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양당정치를 하면서 굉장히 극단적으로 진영 논리화된 측면이 있었거든요? 의회 민주주의가 굉장히 잘 정착된 국가지만 상대가 상대를 굉장히 악마화하고, “상대 진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다.”라고 주장하면서 그 지지자들은 서로를 굉장히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정치적 환경이 생겨난 상태였어요.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등장한 정치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죠. 이 대통령은 굉장한 포퓰리스트이고, 선동에 능합니다. 자기 지지자를 규합해서 팬덤 정치를 꾸려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기존에 우리가 생각했던 제도적인 절차나 규정 같은 것을 뛰어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쿨한, 새로운 정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굉장히 많이 파괴되었어요.

대통령이 앞장서서 상대를 마구 저열한 언어로 공격하고, 절차를 지킨 사람을 소외시키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의 원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고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를 만든 겁니다. 그렇게 진영 논리화되고, 사회를 갈라치기 하는 정치를 본인 임기 내내 보여줬거든요.

결론적으로 극단적인 진영주의가 공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잉태했고 거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아주 특이한 정치인이 등장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상당히 후퇴하고 파괴됐던 것이죠.

김수형 SBS 기자와의 인터뷰 현장 | 지난 12일

Q. 정치가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든 상황인데요.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역시 극단화된 진영, 팬덤 정치로 몸살을 앓는 중인데요. 이런 가운데 민주주의 하에서 ‘좋은 참여’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집니다.

민주주의에서 미국 정치가 다른 나라에 미치는 파장이 되게 크거든요. 어떻게 보면 미국 정치가 그런 식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나라에도 흡수된 측면이 있죠. 그러면서 또 우리나라 나름대로 독특한 팬덤 정치가 확장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인데요. 이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정치를 스포츠 같이 소비하는 추세가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스포츠 팬으로서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 팀의 1번부터 끝번 선수까지 모두를 좋아하고 지지하고, 안타까워하고 상대 팀을 어떻게든 이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굉장히 간절하잖아요? 스포츠 팬으로서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이게 정치에서도 그런 행태가 연장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인은 잘했을 때 칭찬을 받고, 못했을 때 비판을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정치인의 팬으로서는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기보다는 약간의 ‘정치적인 거리 두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도 틀릴 수 있고,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맹목적 지지가 꼭 좋은 정치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세계 민주주의의 중심이라고 자부했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빠진 상황을 바라보면서 1)브이뎀 연구소(https://www.v-dem.net/)가 발표했던 2022년 보고서의 내용이 다시 한번 떠올랐습니다.

1) 브이뎀 (V-Dem: Varieties of Democracy 지수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의 브이뎀 연구소가 매년 각국의 선거, 자유, 평등, 참여, 숙의민주주의의 수준을 측정해 제시하는 민주주의 측정 지수로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민주주의 척도로 사용된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가 감지되고 있다.”는 내용과 더불어 “국가의 정치적 양극화가 높아질수록 자유민주주의 지수가 하락한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인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악마화하고 사회,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SBS D포럼 2019에서 SDF는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끝단이 아닌 60% 정도의 중간에 위치한, 평소에는 목소리는 잘 내지 않는 사람들을 ‘진지한 주시자’라고 명명한 적이 있는데요. 시민 사회의 분열을 부추기고, 편 가르기에 몰두하면서 세력화에 골몰하는 정치행태에 대해서도 바로 이 ‘진지한 주시자’들의 감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SDF다이어리는 다음 주, 조금은 늦은 여름 휴가를 보내고 8월의 마지막 날 돌아오겠습니다.건강하고 안전한 여름날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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