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다이어리

Ep.105

Ep.105정치랑 내 삶이 관계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2022.06.08

안녕하세요? 지적인 당신을 위한 인사이트, SBS D포럼에서 보내드리는 SDF 다이어리입니다. 지난 수요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르면서 2주 만에 인사드리네요. 투표는 잘하셨나요? 사실 지방선거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가뜩이나 투표 용지도 많은데 후보 수는 왜 이리 많은지, 인물부터 공약까지 꼼꼼히 따진 뒤 투표하기가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벽보>

혹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그리고 교육감을 뽑는 지방선거가 우리 삶과 더 밀접할 수 있다는 생각, 한 번쯤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인물도 모르겠고 화제성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이번에 뽑힌 의원들이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의 이슈를 가장 가까이서 살피게 될 사람들이더라고요.

오늘은 정치가 왜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됐는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SBS 미래팀은 ‘더가능연구소 서복경 대표’를 만났습니다. 지난 2020년 처음 만들어진 더가능 연구소는 정부(행정안전부)의 공식 지원을 받아 전국의 주민 자치 관련 단체와 함께 포럼을 운영하는 등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개개인에게 골고루 영향을 미치는 민주주의에 대해 지속해서 고민해 온 만큼 더가능연구소 서복경 대표를 통해 ‘정치와 개인이 가까워지는 법’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대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더가능연구소 서복경 대표입니다. 저는 2003년 ‘한국 정당체제의 기원과 변화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으로 근무했으며, 2008년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한국 민주주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더가능연구소는 2020년 10월 ‘민주주의’, ‘로컬’과 ‘청년’을 핵심 주제 분야로 정한 뒤 평소 고민을 함께 해왔던 몇몇 연구자들과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 연구를 지속하다 보니 마을, 주민자치, 로컬경제, 지방정부 청년정책 등 풀뿌리 현장에 대한 기록과 연구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돼 만든 연구소입니다.

Q. 이번 지방선거는 어떻게 보셨어요?

기후재난, 감염병 재난, 불평등 심화, 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로 인한 문제 등에 대응하는 지방정부의 정책이 시민의 삶에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지방정부를 선택하는 선거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하는데, 지난 선거에 비해 10%가량 투표율이 낮아져서 여러 고민을 하게 됩니다. 단기적으로는 대통령선거 직후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라는 상황 요인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민자치, 지방정치를 고민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에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Q. 참 오랜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롭지 않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삶과 괴리된 정치유권자는, 사람들은 왜 정치가 우리 삶과 관련성이 적다고 느낄까요?

정치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다양한 의제를 결정하는 절차이자 과정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국가 단위로도 존재하고 광역지방 단위, 기초지방 단위로도, 혹은 동네 단위로도 존재합니다. 단위마다 지금 이 시간 해결해가야 하는 핵심문제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또 헌법과 법률에 따라 각 단위 정부와 의회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도 다릅니다. 그렇기에 단위마다 의제를 제안하고 논의하고 결정하는 주체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동네마다, 시군구마다 다른 의제를 발굴하고 함께 결정하는 과정이 모여서 광역 의제가 되고 중앙의제가 될 때, 시민들은 정치가 내 삶의 문제를 다루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네나 시군구 단위의 정치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갑자기 중앙정부나 국회에서 거대한 의제를 들고 나오면, 시민들은 멀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대의 민주정치에서 정치과정을 작동시키는 핵심 주체로서 정당의 기능이 주요한데, 현재 정당 시스템은 지방 단위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Q. 실제 우리 삶과 밀접한 이슈가 중앙 정치에 반영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군요.

주민의 생활권에 보다 밀착된 작은 정당을 어떤 분은 지역정당이라고 하고 또 어떤 분은 지방정당이라고 합니다. 저는 훨씬 더 작은 범위에서도 정당정치는 가능하다는 상상을 해보기 위해 ‘동네당’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동네당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유권자들이 동네에서 고민하는 문제들을 파악해서 이슈를 발굴한다는 점이에요. 국가에서는 어느 동네에 무엇이 문제인지 세세하게 파악하는 게 쉽지 않죠. 두 번째는 차기 정치인들의 공급망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중앙정치를 담당하는 많은 정치인들은 곧바로 중앙당 당직, 국회의원, 장관 등으로 정치를 시작합니다. 이른바 ‘발탁 인사’로 정치에 입문하는 정치인들은 동네나 시군구 단위 생활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모릅니다. 예컨대 어떤 법을 만들었을 때 그것이 권역이나 광역, 기초, 동네 단위에 미칠 수 있는 차별성 영향에 대한 감을 갖기 어렵습니다. 반면 동네, 지역 생활권에서 다양한 실천을 통해 정치를 경험하고 중앙정치에 이른 사람들은 시민의 삶의 공간인 골목, 동네, 시청, 군청, 구청의 일과 감각을 가지고 국가적 의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동네당, 동네 정치의 활성화는 결국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 정치의 문제와 연결되는 겁니다.

<국회 외경>

Q. 요즘 소셜미디어에서 보면 정치인들의 황당무계한 발언 등이 콘텐츠로 만들어지기도 하잖아요. 정치인을 희화화해서 정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있고, 정말 정치인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매체 환경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도 있지만, 제대로 훈련되지 못한 정치인들이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정치인의 말은 일상의 언어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특정 의제의 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고 현재 쟁점은 무엇인가, 중앙 정치에서 보기에 똑같은 기후재난이라도 인천, 광주, 철원에서 각각 어떻게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가 등은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습득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책임의 범위가 가장 넓고 큰 직업이 대통령,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입니다. 모든 시민의 삶, 생계, 생명, 생활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활 단위에서부터 거르고 걸러서 훈련된 인물이 중앙 정치에 올라와야 합니다. 이런 것을 ‘정치적 사다리 구조’라고 하는데, 이 사다리가 잘 작동돼야 민주주의 안정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다리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정치인으로 훈련되지 않은 정치인들이 국가적 의제를 다루다 보니 시민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Q. 정치적 사다리 구조는 어떻게 복원해야 할까요?

민주화 이후에 정당제도 디자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고, 이후 개혁도 지체됐습니다. 현행 정당법은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에서부터 선관위에 신고를 하게 되어 있고, 5개 시도당 1천 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만 정당 결성을 할 수 있게 해 놓았어요. 세금으로 지원을 받는 정당,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직자가 있는 정당은 활동 공개나 회계 보고 등의 규제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결성 단계에서부터 이렇게 규제를 받으면 시민들이 정당 결성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동시대 삶과 직결된 이슈를 발굴할 수 있는 작은 단위의 정당 결성이 제한되다 보니 사람들은 정당을 통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시민운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죠. 시민운동으로 할 영역이 있고 정당 활동을 통해야 할 영역도 있습니다. 동네당이 로컬의 시민참여 에너지를 1차적으로 모으는 그릇이 되고 여기에서 모인 이슈와 사람들이 점점 더 큰 단위의 정치로 범위를 넓혀갈 수 있어야, 다양한 정치적 사다리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Q. 우리나라뿐 아니라 민주주의 위기라는 말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민주주의 위기’는 지금 전 세계가 고민하는 이슈가 맞습니다. 글로벌 민주주의 지표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지표가 꾸준히 하락했고, 권위주의 국가의 수도 늘고 있어요.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특징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Q. 2008년 이후 민주주의 지표가 전 세계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해왔던 미국이나 프랑스 등도 민주주의 지표가 나빠졌어요. 첫 번째로 꼽히는 원인은 ‘불평등 심화’입니다.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정치공동체의 중대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시스템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함께 당면한 핵심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일 수밖에 없고, 시장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시장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면 해결 방법을 찾는 민주적 합의과정이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 특히 선진국들에서 불평등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연장에서 민주주의 지표들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Q. 코로나로 인한 국내외 격차나 불평등은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SBS 미래팀은 개인 정보의 자기 결정권, 디지털화된 개인정보의 관리 문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코로나 이후 시장구조의 변동은 더 극적입니다. 코로나 이후 조사된 부의 양극화, 불평등 보고서가 있는데, 불평등으로 인한 민주주의 약화가 바로 연결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디지털화된 정보와 국가의 통제에 대한 부분입니다. 코로나 이후 방역을 위한 디지털 국가에 대한 얘기가 자주 등장하죠. 방역을 위해 국민의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집적한다는 것인데, 이 정보가 개인의 통제 수단으로 쓰이면 시민적 통제가 되는 거죠. 기후재난이나 감염병 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적 수준의 정보 집적과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방역이나 재난 대응에 효율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개인정보가 시민적 권리를 제한하거나 사적 자유를 침해하는데 쓰이게 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시민적 권리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모습이 달라지게 되는 거죠.

Q. 갈등과 분열 합의하지 못하는 정치와 개인,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민주주의의 지표도 언급하셨는데, 객관적으로 위기가 확인될까요?

전 세계 각 국의 민주주의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가 여러 가지 있어요. 예컨대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 소재 연구소에서 발표하고 있는 민주주의 다양성 지수(V-Dem Index)나 영국에서 발간하는 저널인 이코노미스트지에서 발간하는 민주주의 지수(EIU Index) 같은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그 지표들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잘 구현하고 있는 최고 등급 국가로 분류돼 있어요.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로 넘어온 뒤 35년째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죠. 정치학에서는 비민주주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한 경우 선거를 통해 두 차례 정권 교체를 안정적으로 이룬다면 다시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우리는 3번의 정권 교체를 무리 없이 해왔고, 우리 체감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잘 지켜오고 있는 나라로 평가되는 거죠.

<민주주의 다양성 지표인 브이뎀 지수(V-Dem Index)는 각 국의 민주주의의 등급을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IES) ▲선거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IES)▲선거권위주의(ELECTORAL AUTOCRACIES) ▲폐쇄권위주의(CLOSED AUTOCRACIES) 4가지로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상 등급인 자유민주주의로 분류되며, 이는 선거의 자유에 더해 시민적 자유도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Q.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질이 지표상 가장 잘하고 있다는 등급에 랭크됐다는 게 의외고 놀랍기도 합니다. 체감과 지표가 왜 다른 걸까요?

누가 봐도 멀쩡한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실제는 잘 돌아가지 않고 있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35년으로 매우 짧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48년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인 제헌헌법 채택 이후 1960년 4월 혁명으로 1차 민주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5.16 쿠데타로 군사정부가 들어섰고 1987년 두 번째 민주헌법을 채택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랜 비민주 체제 경험을 가졌다가 민주주의로 전환한 국가들 중에서는 민주화했다가 다시 권위주의로 갔다가 또 민주화를 하는, 그래서 2번, 3번 민주화를 하는 나라들이 많아요. 그런 나라들과 비교해서 보면 2번째 민주화를 하고 35년 동안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건 모범적인 모델 사례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너무 짧은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질 좋은 민주주의, 더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까지 고민이 이르지는 못했어요. 이제는 ‘민주주의 질적 전환’을 도모할 시기입니다.

Q. 민주주의 질적 전환이란 무엇인가요?

공동체가 함께 당면한 중대 의제에 대해 제때 합의가 가능한 시스템이 안착이 되는 것이 중요하죠. 그 핵심은 시민적 동의입니다. 그렇다면 시민적 동의는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치와 시민의 삶, 요구가 가까워야 해요. 방법론으로는 동네 단위 주민자치가 활성화되어야 하고 동네당의 결성이 쉬워야 하고 동네당과 중앙정치를 담당하는 큰 정당들 사이에 연계구조가 마련될 수 있어야 하고, 읍면동, 시군구, 광역시도, 중앙정치를 포괄하는 정치적 사다리 구조도 제대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Q. 사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나를 대의하는 대표자와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는가의 고민인 것 같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위기를 많이 얘기하는데, 근대 대의민주주의가 왜 시작됐냐면 국민국가를 구성하는 총인구 규모가 과거에 비해 많이 커졌기 때문이거든요.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이 정점이던 시기에 총인구로는 30만 명 정도가 살았지만 (당시 기준으로 여성, 외국인 등 빼면) 시민권을 가진 시민은 고작 3만 명 정도였다고 해요. 이들이 9일에 한 번씩 민회를 했는데 그때 마다 평균 6천 명 정도씩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이 넘어요. 그러니 고대 아테네 민주정 모델로는 정치가 작동하기 어렵지요. 다양한 단위에서 다양한 모델이 필요합니다. 국가 차원의 큰 정치는 대표를 뽑아서 하지만, 주민자치 수준에서는 추첨으로 구성해볼 수도 있고, 시장에서는 노사정 협의 모델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각 단위의 사정과 조건에 맞게 다양한 민주주의 모델들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전체로 국가공동체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넓고 탄탄한 뿌리가 될 때 대의민주정이 가진 근본적 결함, 대표자와 대표를 뽑는 시민의 간극이나 괴리를 줄여줄 수 있습니다.

Q.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확대해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더라고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도 법을 만들어 한꺼번에 진행하거나 하나의 모델이 전국에 적용되는 그런 방식일 수는 없어요. 개인적으로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꿰어 쓸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미국의 경우, 타운홀 미팅, 동네 마을 총회 같은 것이 자주 열려요. 그리고 서울 시민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나라도 지역에서는 마을 총회를 자주 여는 곳이 적지 않거든요. 이런 대면 조직들이 활성화돼야 개인들의 삶과 연결된 이슈들이 발굴되고 궁극적으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온라인에서는 열성적인 소수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될 수밖에 없어요.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하고, 편향된 목소리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작은 단위의 민주적 조직들의 활성화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Q. 권력구조 개편 검토 등 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형태 개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제와 의회제를 택한 국가의 비율을 보면 거의 반반 정도예요. 그러나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어왔다고 평가받는 나라 중에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국가는 미국, 프랑스, 우리나라 정도입니다. 남미나 아프리카, 다른 아시아의 대통령제 국가들에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은, 식민지 경험을 하고 독재체제를 경험하면서 간간이 민주주의를 해보았던 불안정한 역사 때문인지, 정부형태 때문인지 그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 사례들에 비추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정부형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단정적으로 하기는 조심스럽죠. 다만 시민들이 동의한다면 정부형태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다른 나라 사례들을 보더라도 한 번 택한 정부형태를 바꾸는 건 매우 어려워요. 우리나라도 대통령을 직접 뽑지 않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 많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Q. SBS D포럼은 올 11월 초 개최될 예정입니다. 대표님은 올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여느 때보다 민주주의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입니다.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은 다양한 차원에서 진단되고 있고, 어느 하나의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당장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조건은 건 뿌리가 튼튼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의 질적 전환을 위해 다양한 작은 민주주의 모델들을 실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지방자치법 제4조에는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다양한 지방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조항대로라면, 지방정부 형태를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어요. 지방정부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군수 선거에 결선 투표를 도입해 본다든지 행정부 수장을 공모로 뽑거나 중앙정부 공무원 중 실적 좋은 사람을 임명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이런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을 구성원이 경험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민주주의의 체험장이 될 수도 있죠.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 질적 전환은 개인의 삶, 요구를 정치가 반영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더가능연구소의 서복경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동네 문제를 잘 아는 정당들이 많아진다면 ‘정치가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바람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실현 가능할까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바로 정당법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 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3)”고 명시돼 있습니다. 1000명 이상의 당원들을 지닌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17조, 18조)만 선관위에 정당으로 등록돼 공식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에 중앙당을 둔 전국정당만이 후보자들을 공천하고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지위를 갖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현행 정당법의 ‘수도 소재 중앙당’ 조항은 5·16 군사쿠데타 후 1962년 제정된 정당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서복경 대표를 비롯한 여러 정치학자들은 “1962년에 만들어진 정당법이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며 “이런 규제 때문에 개인의 삶과 밀접할 수 있는 ‘동네 정당’들이 생겨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60년 전 당시 만들어진 법이 과연 21세기 지금에도 유효한지 들여다봐야 할 때입니다.

지역 소멸 위기를 이야기할 정도로 지역의 격차가 크고 나름의 고유의 의제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 대한민국 220여 곳의 기초 지방정부가 밀접한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 때, 마침내 정치가 개인의 삶을 보다 더 잘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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